개인적으로 공부하는 모임에서 알게 되어 인상깊이 각인된 말이 있습니다.

그것은‘위대한 평민’입니다.

카톨릭 수장이신 김수환추기경이 돌아가셨을 때 신자는 물론이고 종교를 초월하여 전 언론과 정치권, 사회 각계의 애도와 연일 계속되는 추모의 물결이 전국에 넘쳐났습니다. 장례행사도 추모식도 거국적이라 할 만했습니다. 우리가 사회적으로 저명하신 어른을 기리며 추모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고 할 만합니다. 그런데 저는 동시에 다른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대한민국이라는 이 사회를 떠받치고 있는 가장 굳건한 ‘기둥들’에 대해서입니다.

 

그리고 그 굳건한 밑바탕이 되는 ‘기둥들’은 어떤 사람들일까를 다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몇 안 되는 사회적으로 저명하신 어른들로 인해 극도의 물질만능과 이기적인 사회 면면 공익적인 목소리, 나 자신만의 삶에서 벗어나 타인의 삶과 사회 전체에 대한 관심을 잃지 않으려는 노력과 실천들의 명맥이 이어져오고 있다고는 결코 생각지 않습니다. 10여년 이상 시민으로서의 사회 활동과 시민단체회원의 일원으로서 현장에서 느껴온 저 자신의 경험을 통해서 우선 그렇게 확신합니다. 

  

내가 보는‘대한민국의 기둥들’은 어쩌면 그리 유명하지 않아도 자기 자신의 삶의 일정부분을 개인의 이익만을 좇기보다 사회와 공익을 위해 시간과 노력, 봉사, 때로 헌신을 기꺼이 내어 놓으신 분들입니다. 누가 그다지 알아주는 이도 없는데, 묵묵히 그 뜻을 실천해 오신 분들입니다. 그 분들이 돌아가실 때는 가까운 분들 외에는 사회에 그다지 알려져 있지도 않기에 별로 많은 분들에 의해 기억되지도 못하는 분들입니다.

   

그러나 그분들의 그러한 숭고한 뜻과 의지와 실천이 있었기에 우리 사회가 많은 어려움과 혼탁 속에서도 그나마 작은 자정능력과 사회와 국가에 대한 관심과 애정을 나누려는 노력들이 이어지고 있다고 느껴집니다. 그리고 내가 이론적으로 배운 ‘위대한 평민’에 대한 개념과 이해가 보다 명확하고 분명하게 느껴졌던 것은 삶 속에서 무엇보다도 2003년부터 함께해 온 ‘평화통일시민연대’단체 원로회원분들의 활동과 노력들을 가까이서 보아왔기 때문입니다.

    

 

고 홍순명 명예이사장님과 여러 말씀을 나눈 것은 2006년 11월 3일 ‘평화통일시민연대 5주년기념 특별 인터뷰’를 통해서였습니다. 당시 문정동 자택에서 함께 대담을 나누었는데 황완선생님, 정영수선생님, 최통성선생님, 류병균위원장님 등과 함께였습니다. 장시간 대담을 통해 오고간 이야기 속에서 고 홍순명선생님을 비롯하여 초대의 상당수 원로회원분들이 많은 개인적인 것을 희생하고 때로는 어쩔 수 없는 삶의 무게에 갈등하면서도 ‘평화통일’에 대한 열정과 의지로 자신의 삶의 일정부분을 바쳐 왔는가하는 점에 감동을 받았습니다.

 

특히 고 홍순명선생님께서 인터뷰 당시 96세셨으니 85세의 나이에 ‘민족화해아카데미과정’을 무결석으로 이수하셨고 이후 미적지근한 평화통일운동에 비판적이셨기에 (사)평화통일시민연대의 창립에 함께하셨으며 90이 넘은 나이에도 토론회, 거리 시위에 나서 왕성하게 활동하셨던 것을 돌아보면 가장 아름다운 노년의 활동으로 죽음을 준비하신 분 가운데 한 분이셨다는 생각이 듭니다. 또한 개인적으로 가족들과 떨어져 계셨는데도 좀 더 자주 찾아뵙지 못한 것이 가장 아쉽습니다.

  

고 박광원고문께선 아직 한창 나이에 돌아가셨기에 더욱 아쉬움이 큽니다. 특히 병마와 싸우고 계셨을 텐데도 전혀 내색하지 않으시고 얼마 전에는 금강산까지 가셔서 그곳에서 반갑게 뵈었기에 그렇게 갑자기 가실 줄은 생각지도 못했는데 그 때 찍은 사진이 마지막 사진이 되었군요. 사실 그 이전 그분께서 병마와 싸우고 계신 줄도 전혀 몰랐으니 내 무심함도 크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쩌면 안팎으로 다시 냉전으로 회귀하는 남북관계와 우리 평화통일시민연대가 처한 엄중한 현실 앞에 안타까운 ‘평화통일’에 대한 염원과 몰두로 개인의 일을 잘 언급하지 않으려는 평화통일시민연대 분위기도 한 몫 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보이지 않는 평범한 시민, 개인들의 노력과 희생들을 일시에 짓밟고 정권이 바뀌자 평화통일 정책이 실질적‘대북적대정책’으로 전환되어버리는 과정을 보며 분노와 허탈감이 교차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대개 노령이신 평화통일시민연대 한 분 한 분의 희생과 노력을 가까이서 보아왔기에 그 정도는 정말로 크다 할 수 있습니다.

 

‘평화와 통일정책’은 일개 정치인이나 정치권이 그간의 국민들의 노력을 무시하고 한꺼번에 뒤집어엎을 만큼 그렇게 가볍지 않으며 또한 현존하는 국민들 뿐 아니라 후세까지에도 영향을 미칠 중대한 사안이기에 정치적 이익을 좇아 함부로 할 사안이 결코 아니며 특정 정치집단의 정치적 이익을 위해 이용할 대상이 되어서도 결코 안 됩니다.

 

‘평화통일‘이라는 궁극의 목적을 두고 끊임없이 구체적인 방법을 만들어내며 이를 실천하기 위해 각계각층, 전 시민이 함께 해야 할 과제입니다! 이는 전 국민적 삶과 직결된 것이며 완성된 과제가 아니라 현재진행형이기에 누구나 관심을 가져야 하고 일정부분을 함께 해 나가야 합니다. 아마 이것이 돌아가신 고 홍순명선생님과 고 박광원선생님의 유지이며 그분들의 못 다하신 시간들을 이어받은 우리의 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잔잔한 미소와 조용한 목소리로 이야기 하시던 모습이 지금도 생생한데, 아름다운 삶을 살다 가신 분들에 대해 우리끼리만 알고 있기엔 너무 가슴이 답답하단 생각이 든 것도 고 김수환추기경의 장례식을 지켜보면서 교차한 생각입니다.

 

어쩌면 평범한 우리 시민들에겐 정말로 특별나고 유명한 분들보다 이렇게 우리 가까이에서 평범한 일상에서 자기 자신만의 삶에 안주하지 않고 나라와 사회, 공익을 생각하고 삶의 일부를 이에 봉사할 줄 아는 이런 분들에 대한 많은 조명이 더욱 필요하지 않을까합니다.

 

우리 삶에 언제든 닮아 갈 수 있는 ‘위대한 평민’의 모델들이 많을수록, 그리고 이들에 대해 우리 언론과 사회가 인색하지 않게 있는 그대로만이라도 조명할 수 있다면 이 사회를 굳건하게 떠받치는 기둥들이 사회 곳곳에 더욱 늘어나고 살만한 아름다운 세상이 좀 더 가까이 우리에게 다가오게 될 것입니다. ∵  

 

구민선